부처의 치아 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캔디 불치사

부처의 치아가 있는 불치사는 수많은 공양을 받고 의식 행사의 중심지가 되는 곳이다. 오늘은 부처의 치아에 관한 흥미로운 전설을 알아보자.
부처의 치아 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캔디 불치사

마지막 업데이트: 16 7월, 2022

스리랑카 캔디에는 불교의 역사적인 유물인 부처의 왼쪽 송곳니를 보관하고 있는 사원이 있다. 캔디 불치사에는 매년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불교 신자와 관광객이 방문한다. 오늘은 부처의 치아 사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알아보자.

이는 2.5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송곳니이지만, 2,5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부처의 치아 사리에 관한 전설

전설에 따르면, 고타마 붓다가 기원전 483년에 사망했을 때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4곳의 다른 장소에 안치된 후 다양한 사원이 생겼다.

이때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잿더미 속에서 타지 않은 부처의 치아를 발견했다. 그 가치를 짐작한 그는 인도 동부에 있는 칼링가 왕국의 왕에게 치아를 선사했다.

부처의 치아 사리를 둘러싼 갈등

그 시점부터 부처의 치아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부처의 치아를 소유한 사람이 영토를 통치할 권리와 권력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붓다 사후 800년이 지난 서기 4세기경, 부처의 치아는 칼링가 구하시바 왕의 손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갈등을 피하고자 치아를 숨겨진 장소인 현 스리랑카에 영원히 숨기려고 했다.

그리하여 왕은 부처의 치아를 헤마말라 공주에게 전달했다. 헤마말라 공주는 단타 왕자와 함께 자신의 머리카락에 부처의 치아를 숨겼고 인도를 떠나 갠지스강을 건너 스리랑카 북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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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에 도착한 부처의 치아

Kithsirimevan 왕은 자신의 궁전에 부처의 치아를 안치할 사원을 지은 후 매년 음력 7월 1일을 페라헤라 축제의 날로 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처의 차이를 소유하는 주인과 장소가 바뀌고 이를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었다.

16세기 초가 되자 부처의 치아는 포르투갈인의 손에 넘어갔고, 그들은 불치를 스리랑카 캔디 시에 숨겼다.

그 후 현지인들과 네덜란드 정착민들이 치아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사원을 지었고,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그 사원이 바로 불치사다.

부처의 치아 존재 여부를 떠나, 불치사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 중 하나다. 부처의 치아는 금과 보석으로 만든 사리함에 봉안되어 있으며, 문에는 상아 조각이 있다.

이는 부처의 생애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유물이므로, 수많은 의식 행사의 대상이 된다. 페라헤라 축제는 아직도 매년 열리는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행사다.

페라헤라 축제

매년 음력 7월 1일부터 11일간 캔디 시에서 주최되는 페라헤라 축제는 부처를 기리는 스리랑카의 연례행사다.

특히 화려한 자수로 장식한 코끼리의 야간 행진은 행사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그중 가장 큰 코끼리가 무거운 황금 가마에 안치한 부처의 치아를 짊어지고 행진한다.

이 축제 기간은 부처의 치아가 불치사 밖으로 나오는 유일한 순간이다. 하지만 실제 불치는 사원 내부에 보관하고 행사에는 복제품을 사용한다고 한다.

페라헤라 축제는 스리랑카 전체와 캔디 시에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행사다.

부처의 치아 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캔디 불치사

현 상황

오늘날 부처의 치아는 많은 사람이 보호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물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유리 진열장으로 치아의 실존 여부에 의문을 제기한다.

불교의 중요한 상징인 부처의 치아에 관한 전설은 역사를 거쳐 쭉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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