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엉덩이 때문에 전시품 취급을 받은 여인의 슬픈 이야기

· 4월 15, 2016

이 이야기는 19세기 부조리의 시대에 노예제도가  슬픈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던 때의 실화이다. 이 이야기에서 당신은 특이한 유전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그것을 전시해야만 했던 젊은 여인, 사라 바트만(Saartjie Baartman)의 슬픈 이야기를 알게 될 것이다.

납치와 노예제도

사라 바트만은 20살이었으며, 그녀의 마을에서 보통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코이코이라는 아프리카 부족에 속해있었으며,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고 살았으며 그들의 종교에 확고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젊은 여인은 아름다운 아프리카 대륙의 지평선 너머로 무엇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었지만, 아프리카 대륙은 오랜 시간동안 유럽인들에 의해 공격당하고 짓밟히고 있던 상태였다.  사라의 몸을 보고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두 명의 프랑스인 헨드릭 세자르와 알렉산더 던롭에 의해 끌려 나가던 날 이후로, 사라의 삶은 완전하게 바뀌게 된다.

이 젊은 여인은 스티아토파이지아 (둔부 지방 축적)이라는 코이산족(부시맨과 호텐토트라고 알려진 목회자 코이의 부족)이나 반투족 같은 아프리카의 부족들사이에서는 아주 흔한 질병을 앓고 있었으며, 그저 비정상적인 지방이 엉덩이부위에 축적이 되는 것 뿐이다.  중증 비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또한 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라의 경우는 매우 충격적이었으며, 이 두 남자는 이 여인을 런던 극장이나 박람회에서 전시함으로서 부자가 될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블랙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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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녀를 블랙 비너스 혹은 “호텐토트 비너스”라고 불렀는데, 그녀의 출신 부족 사람과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어떻게 그리고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라는 불과 며칠사이에 런던의 여러 극장 무대에 서게 되었다. 쇼는 아주 원초적이었으며 굴욕적이었다. 관객들 앞에 나체로 서야 했는데, 그들의 눈은 병적인 기대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예상했듯이, 남자들이었다. 여러 사회적 지위의 남자들이 이 젊은 호텐토트 여인과 그녀의 큰 엉덩이를 보기 위해 기꺼히 높은 가격을 지불했다.

4년의 긴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일이 계속 계속 벌어졌으며, 이는 부지불식간에 그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축제의 관심거리가 되어버린 이 여인에게 실로 정신적인 고문이었다. 그녀를 노예로 삼은 남자들은 금세 부자가 되었으며, 같은일을 다른 도시에서 반복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4년 후, 그들은 파리로 갔다. 다시, 이들은 꽤 성공을 거두었다. 비열한 사람들, 호기심 많은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 모두 젊은 사라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찾았으며, 이 남자들은 공개적인 공연으로 그녀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또한 사적인 용도로 그녀를 사용하길 원했다.

여기서 그녀는 더 많이 관찰되었으며, 그녀의 “주인들”이 더 많은 돈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은 공연에서 즉시 중지되어야 할 용서할 수 없는 굴욕과 타락한 행위를 목격한 노예해방주의자들의 반대 목소리를 듣게 된다.

헨드릭 세자르와 알렉산더 던롭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비판에 대하여 사라는 그녀의 의지에 따라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간단한 말로 그들 자신을 변호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가 서명한 계약서로 이를 증명했다. 하지만 이 문서는 네덜란드 어로 적혀있었고, 이 젊은 여인은 물론 전혀 알지 못하는 언어였다.

불행한 삶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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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비너스 쇼에 대한 비판은 계속 이어졌으며, 그녀의 주인들은 쇼를 중지하고 사라를 팔도록 압박을 받았다. 그녀는 그녀의 유명세와 영향력을 이용하고자 했던 프랑스 딜러에게 팔렸다. 

더 어둡고 더욱 굴욕적인 방향으로… 그는 그녀를 다시 전시하기 위한 사설 쇼를 파리 거리의 클럽에서 준비했으며, 그녀를 매춘에 사용했다. 원하는 남자들은 모두 엉덩이가 큰 여인, 유명한 호텐토트 비너스와 관계를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고통과 불행의 세상이 조금씩 그녀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때 까지 이렇게 몇년을 더 보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원인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추해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매독, 결핵, 폐렴 그리고 당연하게도… 슬픔. 그녀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삶에 대한 엄청난 슬픔.

이 시점에서 당신은 죽음이 그녀를 드디어 쉴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 이후, 사라의 몸은 전시를 위해서 해부가 되었으며, 이번에는 파리의 남자 박물관이었다. 그들은 그녀의 , 생식기, 골격을 전시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잔혹성에 대한 증언과 우리 사회에 노예제도가 미쳤던 영향을 보존하고자 결정했던 1970년대 까지 계속되었다.

사라 바트만의 진정한 휴식은 넬슨 만델라가 1984년 올바른 장례를 위하여 이 젊은 여인의 잔재를 아프리카로 돌려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을때 이루어졌다. 그녀가 태어난 땅에서 그리고 그녀가 절대 떠나지 말았어야 할 그 땅에서, 그녀가 마땅히 누려야 할 휴식과 평화를 드디어 찾았다. 이 큰 엉덩이를 가진 여인, 블랙 비너스, 는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그리고 절대로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역사의 다른 사례이다.